오늘이 있기까지 저의 몇가지 어려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여덟살 때에 미국에 이민을 왔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학업을 하시고 다시 한국으로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13살 때의 일입니다.

나는 미국사람이야. 노란 머리에, 영어에, 친구들도 다 미국인이고

13살 사춘기 힘든시기에 저는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부모님께서 많이 고민하시고 기도하신 후에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키셨어요. 외국인 학교에 다니며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5년을 보냈어요.

날마다 울면서 부모님께 불평했고 다시 미국 보내 달라고 떼를 쓰면서 장난이 아니었어요. 한국에 두면 나는 미쳐 버릴 것이라고 부모님께 말했습니다.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 한국에 남겨 두시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게 하셨는지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제가 전문 상담사로 일하면서 저같은 Korean American 아이들의 어려움을 위해 연구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지금에서야 하나님께서 한국에 보내신 그 때가 가장 알맞은 시기였구나 깨닫게 됩니다.

 13살이면 영어를 익히고 잋지 않는 시기이며, 또 한국말을 계속 사용하고 배울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곳 미국에서 태어난  동생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부모님과 생활하다가 나도 미국 시민권자 이므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고 싶다고 미국을 왔습니다.

 20살 때에 갑자기 동생을 돌보는 Single Parent가 되었습니다.

동생은 키와 몸도 커고해서 내가 동생을 돌본게 아니라 동생이 나를 지켜준지도 모르지요.

힘든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대학생활은 자고 싶으면 자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그러나 동생을 돌보면서 하루 3끼 식사에, 라이드하고 아프면 병원가야하고, 운동과 엑티비티에 따라 가야하고, 학부모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저녁시간은 시간에 맞추에 집에 돌아와야하고

 더구나 동생은 너무나 많이 먹어서 소문이 났고 아이스 박스를 들고 따라 다녀야 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 주님의 뜻대로 성장한 동생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동생을 사랑하는지 알게 됩니다.

요사이 상담을 하고 그리고 자녀들 교육과 생활에 대한 세미나 요청을 받으면서 가디언으로 동생을 돌본 경험이 도움이 됩니다.

 

저의 젊은 시기에 이 2가지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 저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꼭 필요하셔서 훈련하게 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샤롯츠빌에 와서 노스사이드 교회에 출석하고 함께 교제한 것 감사 드립니다.

부모님 떠나 유학생활 하는 것 어려운 일인데, 목사님, 사모님, 성도님들의 기도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를 박사학위 논문 발표와 리셉션에 초대합니다.

그동안 도와 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는 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이 땅에 한알의 밀알로 보내 주셨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그대로 있어면 썩어 사라지지만, 한알의 밀알이 죽어질 때에 수 많은 생명, 열매를 맺게 됩니다.

명화자매가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주님의 뜻대로 한알의 죽는 밀알이 되었을 때에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셨습니다.

 

* 명화 자매는 UVA 교육학 박사과정을 하는동안 동시통역으로 봉사하며 노스사이드 한인교회에 출석했습니다.

현재는 하바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로 섬기고 계십니다. 자매님의 가는 길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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