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핍박이 올 때에 (행 4: 1-12)                         06-29-2008 설교요지

 

 

1. 오순절 날 모인 무리 모두에게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무리들이 변화 받고. 베드로가 변화 받고. 복음을 전할 때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개하며 주님께로 왔으며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놀라운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닥쳐오기 시작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들이 붙잡혀 옥에 갇혔습니다. 교회의 위기 입니다.

이 어려움을 사도들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 살펴보며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2. 본문.

 

1절,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 들이 옵니다. 이들이 핍박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가장 많이 책망을 받았던 사람들도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오래 신앙생활 했다고 자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2절, “백성을 가르침과 주님의 도 전함을 싫어하여” 핍박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도 전함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죄가 밝혀지고, 그들은 지도자로서의 기득권이 사라져  이익과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3절,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했고, 성령님이 임재했고, 예수님의 죽으심 과 부활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더니 핍박과 환란이 닥쳐온다면 누가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바랐습니다. 초대교회 사도와 믿음의 공동체의 삶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고 순교까지 당하였습니다.

 

4절,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듣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사도들은 옥에 갇혔으나 믿는 자는 점점 더 많아집니다. 남자가 5000명이면 여자와 아이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자들입니까. 그들은 말씀을 들은 자 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전하는 자가 없이 들을 수 있으며 듣지 않고 어찌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말씀이 전해지고 들을 때에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가 뜻을 정하여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기로 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전하면 영혼이 주님께로 온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시간 복음을 전하는 심령이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6절, 종교지도자 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세워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을 심문하던 생각이 떠올라 베드로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죽을지도 몰라.

 

7절,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우리가 종교 지도자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인데. 누구 마음대로 누구 허락 받고 이 일을 했느냐? 종교지도자로서 기득권을 주장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인간 권위가 나타납니다.

교회 안에서의 분열은 기득권의 싸움입니다. 내가 직분자니까, 내가 오래 되었으니까, 내가 개척 멤버니까,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헌금을 많이 했으니까, 내가 믿음이 더 있으니까, 이러면 내가 손해보지…그러나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침례 요한의 믿음과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먼저 나서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메시아라고 와서는…. 제자들까지 부추깁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고백합니다. “주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쇄해야 하리라” 주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나는 사라지고, 죽어지고 선해보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8-10절, 핍박이 있는 그 자리에서 “한번만 봐 주시오. 다음부터는 골라가며, 눈치 봐가며 전하지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 소녀 앞에서 죽음이 두려워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쳤던 베드로 입니다. 그러나 핍박이 와도, 자기들도 예수님같이 십자가에 달릴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 합니다. 이는 성령님으로 충만하며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뜨거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예수님의 도를 전하지 말라고 하는 종교지도자 와 공회 앞에서 베드로는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복음은 시간이 나면, 기회가 되면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피곤해도, 내가 시간이 없어도,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파하라.” 

그리고 베드로는 2가지의 사실을 그들에게 전파합니다.

 

11-12절,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이스라엘 종교지도자 들은 쓸데없는 버린 돌같이 예수님을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를 살리 사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 돌, 구원의 반석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변치 않는 반석.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여러분의 교회에서 예수님을 빼어 버린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머릿돌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교회로 보내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모두가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합당한 머릿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요14:6절,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다른 이름으로 오면 잘도 용납하는구나. 그런데 너희는 어찌 나를 믿지않느냐?. 주님의 안타까움입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종교와 신들이 유혹을 하고 있습니까? 이는 만든 신이요 피조 된 신이요, 하나님의 신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 되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을 주시는 신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학자들은 다른 이름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으시면 이 시간 조용히 정직하게 믿음으로 예수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우리는 타협할 수도 없고 타협해서도 안 되는 귀한 이름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사도들이 핍박을 받고, 얼마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불로, 물로, 돌로, 사자 굴에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며 이 진리와 믿음을 지켰습니까? 

이 진리의 이름만이 우리를 죄에서, 죽음에서, 사망에서 구원해 줄 이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포기하고 다른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 교회에 나오기를 포기하고 세상을 짝하고 사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우리의 마음을 이 시간 성령님께서 새롭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어 축복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고난과 핍박이 와도 구원 주 예수를 믿고 시인하고 증거 하는 이 사명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8: 17-18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나의 잘못 때문에 받는 고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고난, 교회를 위한 고난, 직분을 위한 고난을, 전도하다 받는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것이 우리에게 면류관이요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축복, 사업, 좋은 대학, 아이들 잘되는 것….

우리가 큰 영광을 받기 원한다면, 예수 이름으로 받은 고난과 핍박이 얼마나 되세요? 예) 터키 독일 선교사 순교.

예수 구원의 이름, 생명을 주는 이름이 너무 귀한 진리이기에, 한 영혼을 구원 시키기 위해 그들은  젊음을 주님 위해 드렸습니다. 그들이 받을 주님 앞에서의 면류관이요 상급이요 영광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고난이 왔을 때에 변명하고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사랑하세요.

믿지않는 한 영혼에게 이 귀한 예수 구원의 이름을 전합시다. 목숨을 겁시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에게, 우리교회에 영광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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