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 (행 4: 13-22)         07-06-2008설교요지


 

1. 우리가 살아가면서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을 때, 갈등이 생길 때에 우리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가?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어머니 편을 들자니 부인이 울고(당신은 마마 보이 야, 몇 주를 말하지도 않고 긁을 생각을 하니, 돌아서 누워서 화를 낼 것이고), 부인 편을 들자니 어머님이 울 것이고(불효자식 같으니라고, 자식 잘못 키웠어, 키워놓았더니 마누라에게 꼭 잡혀서 부모도 몰라보고 서러워 죽겠어). 많은 경우 미국인들은 부인 편을 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부모로 부터 할 수없이 태어났지만 부인은 수많은 자들 가운데 내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 입니까?

오늘 본문에도 큰 딜레마에 빠진 무리들이 있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종교지도자 들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도를 전하는 것을 싫어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죽음을 무릅쓴 담대한 신앙에 핍박하는 자들이 놀라 어쩔 줄 모르고 딜레마에 빠지며 그들을 석방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어떠한 신앙이 이렇게 그들을 쩔쩔메게 했을까요? 살펴보며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2. 본문

 

1). 흔들리지 않는 믿음.

13절, 베드로는 “기탄없이” 말합니다. 그는 성령충만하여 조금도 막힘이 없이 복음(진리)을 전합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학문없는 범인인줄 알았다가.” 그들은 분명 랍비의 정상적인 신학교육도 받지않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아는 것이 많아요. 그리고 “예수와 함께 있는줄도 알고” 저들은 예수와 함께 있어 특별한 것을 전수 받았을 것이야. 그러니 무식한 어부들이 이렇게 거침없이 진리를 말하고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지.

베드로는 공생애 시절,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으로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죽기가 무서워 예수를 3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후에 그의 모습은 달라졌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리셨어. 우리가 증인이야.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야.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시지않았어.” 핍박하는 자들에게 담대히 증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사람들과 환경에 흔들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 이름을 부끄러워 합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사람과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분명한 증거. 

14절,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으나 그들은 동일한 이적을 행했어. 평생 앉은뱅이 거지로 살아온 사람이 일어났어. 그는 성전에서 다니며 뛰며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어.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꼭 붙잡고 따라다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보고 믿고 있어.

만약 사람들이 이 앉은뱅이에게 어떻게 나았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제가 어느날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었어요. 베드로와 요한 선생님이 지나가다 우리를 보라.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셨어요. 그리고 나를 일으켜 세웠는데 그 때 발과 발목에서 뚜두둑 소리가 나며 힘이 나고 그리고 걷고 뛸 수 있었어요. 나는 예수님 잘 모르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나은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요. 하나님 믿으세요.”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간증이요 전도입니다.

공회원의 심문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법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확실한 증인입니다. 증인으로 승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2-3명의 증인의 말을 믿어줍니다. 그런데 평생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의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성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보다 더 큰 증인이 어디있습니까? 그들의 말이 다 사실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말씀따라 체험을 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 기도해 응답받은 것, 성령받아 죄사함 받은 것, 변화받은 것, 지금 예배드리며 찬미드리는 것…그래서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중요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중요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날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나타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 말씀만 듣는 신앙.

15-18절, 공회는 의논합니다.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 표적이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민간에 더 퍼지면 큰 일이니 그를 불러 경계하여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합니다.

19절, 베드로와 요한이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느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너희도 하나님을 믿는 지도자니 판단해보아라. 20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가르치신 것, 보여주신 것, 말씀하신 것; 문둥병자가 깨끗함 받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신이 쫓겨가고, 바다 위를 걷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오병이어의 이적이 나타나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 다 사실이니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겠다.  너희도 하나님 믿지않느냐? 그러면 누구의 말 들어야 하느냐? 그들은 핍박자 앞에서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21절, 그 결과 관원들이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놓아줍니다. 왜? 모든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이루어 진 일들이 있으면 그리고 응답받은 일이 있으면 우리는 잠잠하지 말고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보고 들은 것을 나는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 말씀만 듣겠다고 고백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는 뜻입니까? 그래서 사도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자는 것입니까? 

그 때의 신앙, 순수함, 믿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창립목적도 이와 같습니다.

감옥에서도 사도들은 담대한 말씀,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타난 증거,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말하겠노라는 담대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 세상사람들이 놀라고 핍박자들이 놀라 쩔쩔메고 딜레마에 빠집니다.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믿음과 역사는 공회가, 법정이, 종교지도자 가 멈출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포로의 신분으로 하루 세번씩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나고 많은 자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다니엘의 3친구는 우상에게 절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해 불구덩이에 던져졌지만, 우리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노라. 그리아니하실찌라도의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 받고 많은 자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먹고 마시면, 사람들은 돌아서서 저는 가짜야 라고 말합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우리가 조금 자존심 상하고 손해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대로 행하며 신앙을 지키면, 세상사람 들은 돌아서서 저 사람 진짜야. 나도 저 사람이 믿는 교회, 하나님 믿어야지 라고 말하며 변화 받습니다.

믿는 자의 갈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직장 회식에서 술 마시지 말고 나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말하세요. 친척들에게도 나 교회 나가요 하세요. 친구들에게도 오늘 모임 못 가 교구예배에 참석해야 해. 가족들에게도 몸은 피곤하지만 하나님의 예배 시간에 나가 은혜 받자 라고 말하세요. 어머니와 아내가 갈등 있으면 죄가 잘못했습니다. 제 책임입니다. 화평케 하세요.

 

작은 것부터 성령님이 인도 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담대하게 믿음생활을 하십시오.

이 때 성령의 역사가 있고 주위 사람들이 변화 받고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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