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과 한 뜻으로 나누는 삶 (행4: 32-37) 07-27-2008설교요지
1. 초대교회 성령의 임재가 있고 난 후 무리들이 변화받았습니다. 베드로가 변화받았습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삶으로 변화받았습니다. 날때부터 앉은뱅이 거지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고침받고 저주받은자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변화받았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시인하고 그들의 사정을 그대로 아뢰고 두려워하지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많은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삶이 온전히 바뀌었습니다.
인간에게 변하지않는 가장 큰 욕구는 본능적인욕구 그리고 소유하려는 욕구입니다. 가져도 끝이 없는 것이 인간의 소유욕입니다. 더 가지고 빼앗아서라도 소유하길 원합니다. 옆에 사는 이웃이 배고파 죽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심령에 임하면 내 개인의 소유욕이 사라지고 자발적으로 그 소유를 주님 위해 나눌 수 있는 삶으로 바뀝니다. 즉, 물질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성령의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더 소유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자꾸만 형제자매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고 나누고 있는가?
2. 본문
1). 32절,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사람 마음 하나가 되는 것 쉽지가 않습니다. 부부도 항상 마음이 하나되지않습니다. 그래서 다툽니다. 아버지와 아들도 마음이 같지 않습니다. 교구식구도 하나되기 쉽지않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역사하니까 부부가 하나로, 교구도 하나로, 교회도 하나로 변합니다.
한사람의 변화가 아니라 공동체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믿는 무리입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가 증인이다. 예수가 바로 나의 구세주 이시다. 성령이 임재한 후 하나님의 영이 이를 증거해 주십니다.
그들은 말만하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관심가지고 알게 되었고, 그냥있을 수 없어 나눕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형제가 어려우면, 형제가 곤란하면 내가 먼저 손내밀고 다가갑니다. 주 안에서 형제 자매이므로 내가 감당하려 합니다. 도무지 아깝지가 않습니다. 예). 더위에 고생해서 가꾼 야채를 나누는 것 쉽지않습니다. 아무 조건없이 그저 나누어줍니다.
제 물건을 제것이라 하는이가 없었습니다. 성령이 임하니 나의 나된 것이 주님의 은혜요. 나는 주님의 것, 내 가진 것 주님의 것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교회에 임하기를!
2). 33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주님의 약속대로 사도들에게 큰 권능이 임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이것을 믿으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도 부활의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무리가 큰 은혜를 얻었습니다. 에수의 부활을 듣고 나도 부활할 것을 믿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기다려지고 그리고 영원히 사는 소망이 넘쳐납니다. 그러니 나는 주님의 마음으로 나보다 어려운 자들을 도와야지 라는 마음이 자원해서 생겨납니다. 이구제로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3). 34-25절,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우리 교회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구제하는 마음, 구제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김같이 우리도 형제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긍휼한 마음을 가득 주셔서 내 것을 팔아 사도들이 이를 이루게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구제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시험에 들게되고 내 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이름으로 할 때, 특별 헌금은 그 이름을 기록함으로 그 뜻이 교회에서 전달되게 합니다.
이 내용을 칼빈은 이렇게 주석합니다. “ 우리가 이 기사를 읽고서 감동을 받지않는다면 우리는 강철보다 더 굳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그 당시에 신자들은 그들 자신의 것을 풍성하게 내 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유하기에 급급할 뿐 아니라 무정하게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야만 흡족해한다…그들은 당시 그들 자신의 소유를 팔았다. 오늘날 최고로 세력을 떨치려는 것은 사려는 욕망이다. 그 당시에는 사랑으로 인해 각 사람의 소유가 곤궁한 사람을 위해 공동재산이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몰인정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이 땅에서 같이 사는 것, 물, 공기, 하늘을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조차 아까워서 꺼려한다.”
구제와 선교는 하나님의 뜻이며 성령의 역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건을 달기 때문에 의심하기 때문에 구제하지 못합니다. 구걸하는 자를 보고 저사람은 일하지않기 때문에 구걸해. 저 사람이 번돈을 보스가 다 가지고 갈 거야. 그래서 돈못줘. 이같이 마음을 닫으면 진정 어렵고 불쌍한 사람이 나타나도 절대로 구제하지 못합니다. 의심없이 마음이 감동되는대로 구제하는 것은 축복받는 지름길입니다.
4). 36-37절, 이렇게 자기 것을 나누며 위로한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바나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밭을 다 팔아 사도들 앞에 내어 놓고 가난한 자들을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사도들이 붙여준 그의 이름, 바나바(위로의 아들)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3. 성도 여러분,
멀리서 도울 자를 찾지 마시고 가까이에서 찾으세요.
교구에서, 교회에서, 우리 이웃에서, 교회에 구제하는 일을 정할 때 동참하십시요.
긍휼을 베풀 때에 성령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성령의사람은 우리의 인생이 끝나 주님 앞에 섰을 때를 기억합니다.
주님, 저 얼마나 많이 벌었는데요? 그래서 그것 어디다 썼니? 먹고 마셨어요. 이렇게 고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내가 아플 때에 싸매어 주었고…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다” 하며 주님께서 인정하시며 칭찬과 상급을 받기 원하세요?
청교도들의 전통은 재산을 남기고 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일 위해 모두 사용했습니다.(구제하는데, 선교하는데, 장학제단을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과 영생을 얻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거늘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물질에 눌리며 살아가는지요?
성령의 역사로 내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 고백하며 내 것을 내어 놓고, 내 소중한 것을 한번은 마리아와 같이 깨뜨릴 때에, 그리고 구제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위로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결단할 때에 성령의 임재와 위로와 물질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공급하심이 넘치실 것이고, 여러분의 교회에는 더 많은 구제와 선교후원자들과 물질이 넘쳐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