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마 23; 24:42~51
Dec.06.09 신성일 목사
24:42~51;
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서두
본문의 배경은 23장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은 23장에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호통치셨고, 24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사랑에 미혹되지 않기를 당부하셨다. 이 두 장은 서로 연결된 내용으로 크리스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고 계신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의 신앙생활은 어떠해야 하는가?
본문
1. 언행일치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마23:1~12).
이 본문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였다. 그런데 이 경고는 오늘날 모든 크리스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언행일치된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위선을 버려야 한다(마23:3~4)
3~4;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서기관은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바리새인은 자칭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자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당시 이들은 종교적인 위선이 몸에 배어 있어서 말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은 잘 했지만 지키려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것을 책망하셨으며 오늘 우리에게 위선을 버릴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거룩한 가르침이 있으면 거룩한 행동도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강단에서 높은 수준의 거룩한 신앙생활을 할 것을 설교한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는다. 성도들은 지도자의 표리부동한 삶을 보고 실망하여 비판하고 독설을 말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그들 역시 말씀대로 살지 않고 심지어 교회를 떠난다. 변화된 삶을 살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런 위선이 있다면 속히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변화된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2) 외식을 버려야 한다(마23:5)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경문: 이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는 하나님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네 가지 하나님이 말씀(출 13:3~10; 11~16; 신 6:4~9; 11:13~21)을 양피에 적어서 조그마한 상자에 넣고 끈을 달아서 머리에 두르거나 손에 묶고 다니게 만든 것이다. 즉 말씀상자이다.
옷술: 이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기억하며 지키기 위해서 의복의 옷단 귀에 술을 달게 한 것이다(민15:37~41). 이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 그들의 일상생활까지 관여하신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였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예수님 사역 활동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 옷술을 종교적인 지위를 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경건함을 겉으로 보이기 위해서 옷술을 크게 만들어 달았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의 행동에 대해서 23:27에서 경고하셨다.
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문이나 옷술은 오늘날 십자가 목걸이를 하거나 십자가 브롯지를 하고 경건한 모양을 나타내려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경건이 모양도 있어야 하고 경건의 연습도 있어야 한다. 형식주의를 버리고 진실하고 동일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교회 일을 한 것에 대해서 남이 알아주기를 기대하고 보상 받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 일은 상급이 있건 없건 기쁨 마음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해야 한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시고 많은 복을 주신다.
(3) 겸손해야 한다(마23:6~12).
이 말은 쓸대 없는 자존심과 잘못된 고집, 억지를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겸손하라’는 말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경건함과 거룩성만을 내세우고 실천하는 신앙생활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군림하였다. 그들은 대접 받기만을 좋아했고, 높임 받기만을 좋아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는 다르게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낮은 자의 삶을 몸소 보여 시면서 그의 사역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겸손하라. 섬기는 자가 되라”
예화) 접촉사고-목사님 집사님
딤후3:1~5에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는 말씀이 있다.
세상은 점점 더 인본주의로 흐르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여러 신 가운에서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하나의 위안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자기를 나아 준 부모의 은혜도 거역하고 삶 가운데서 감사가 사라졌다. 이토록 인간은 교만해졌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의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예수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시어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천국으로 가도록 구원해 주셨다. 아무런 대가없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어찌 인간이 교만하여 겸손을 버리고 교만의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는가?
겸손합시다. 잠언22:4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했고, 시22:26에서는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라 했고, 벧전5:5에 보면,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다.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할렐루야!
2. 끝까지 견디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마24:12~13)
12~13;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결혼한 분들에게 묻습니다. 아직도 아내를 남편을 연애시절처럼 사랑하시나요? 아직도 때처럼 사랑하시나요? 아직도 처음 사랑을 느끼신다면 대단하신 겁니다.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어도 결혼한 지 오래 지나면, 사랑이 식어지지요. 사랑이 식어지면 정으로 살아가는 거지요. 이해와 포용함으로 살아가는 거지요. 그런데 이마저도 기어졌다. 황혼 이혼이 늘고 사랑해서 결혼을 했음에도 6개월 살고 다투다가 성격차이라고 더 견디지 않고 이혼을 하는 세상.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사는 우리가 끝까지 견디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1) 기도해야 한다(마24:20).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겨울과 안식일은 유대인이 활동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겨울의 날씨는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땅이 질고 식량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유대인의 율법에 정한대로 1.2miles을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났을 때 안전한 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종말이 바로 이런 혼란의 시기에 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B.C. 168년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안식일에 유대인들을 무망비 상태에서 대량 학살을 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환란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늘 기도하면 환란을 이겨 낼 힘과 지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서 늘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가 됩시다.
(2)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마24:4).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사탄의 활동이 더욱 심해진다. 즉 이단들이 넘쳐나고, 사꾼 목자가 넘쳐나고, 세상을 좇는 성도들이 넘쳐난다. 가족 안에도 불신이 생기도 성도 가운데고 시기와 질투로 인한 큰 상처가 생겨나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은 사탄이 하는 짓이다. 이런 일들로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똑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똑바른 믿음이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신6:4의 말씀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목숨을 걸고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어야 하며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 반석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공부하지 않으면 누가 나에게 와서 ‘그 말씀은 이런 뜻이야’하고 잘못 알려줘도 혹 이단에 빠지는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신앙이 무너지게 된다. 우리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미혹되지 말고 마씀 위에 바로 서서 승리합시다.
3.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야 한다(마24:45~51).
‘충성되고’란 말은 ‘신임이 가고 충실하다’는 말이고 ‘지혜있다’란 말은 ‘사리를 올바로 판단할 줄 아는 지각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의 2가지 임무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일을 맡은 종은 자기의 책무를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수행해 내며 이치에 어긋남 없이 맡은 바를 온전히 감당하는 자임을 말한다 하겠다. 그러므로 이런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이 되려면,
(1) 깨어 있어야 한다(마24:42~43).
42~4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예) 열 처녀 비유(마25:1~13)- 졸지말고 깨어 있으라.
(2)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마24:44).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한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예비하고 있으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충성된 종은 그 주인이 여행에서 돌아서 모든 소유를 맡기는 큰 복을 받지만, 악한 종, 게으른 종은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율법대로 처리하신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종이 되어야 하나요? 충성스럽지 못한 종이 되어서 나중에 후회하고 슬프게 울까요? ‘나중에 하지 나중에 하지’ 하면 늦는다. 지금 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에게 준 일을 크던지 작던지 열심히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충성된 종의 삶이다.
결문
우리의 신앙이란 혹시 예배 잘 드리고 예배가 끝나 교회 문을 나서자마자 받은 은혜와 감격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다 버리고 서로를 욕하고 저주하고 남을 속이고 사랑하지 않고 사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신앙이 아닌가요? 회개합시다. 돌아옵시다. 과거의 못된 습관들을 버리고 구원의 새 옷, 은혜의 새 옷을 입고 사탄의 노예에서 벗어납시다. 그리고 지식적인 하나님을 만나지 말고 가슴으로 하나님을 느낍시다. 거룩한 모양만 가지고 살지 말고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변화된 새 사람으로 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운 환경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의 비젼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믿으십시오.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양- 주만 바라볼지라.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