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츠빌 한인 침례교회
침례에 대해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4)
A. 침례, 세례, 유아세례 - 과연 어느 것이 성경적인가?
장로교인이든, 감리교인이든, 혹은 침례교인이든, 만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명령대로 성경을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들을 지키리니..." (요한복음 14:23~24)라는 말씀처럼 말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figure)이니, 곧 침례라(baptism).(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 - 베드로전서3:21
1. 유아세례, 세례의 기원
카톨릭 교회가 동방정교와 서방의 로마 카톨릭교회로 나뉘어지기 까지는 (11세기경) 100%'침례'가 행해졌고, '유아세례'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주교 내에서는 12세기가 지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사람의 전통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찍어주는 세례, 즉 적례는 A.D. 250년 천주교의 로마 주교였던 노바티안이 병약자에게 찍어주는 약식 세례(관수례)를 실시하여 상당히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 세례는 정통성시비를 일으켰고(Eusebius, Hist. ece). 다시 침례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 최초의 언급문서 : 2세기경 디다케(신약외경, The Didache)) - "침수를 위한 흐르는 물이 없을 경우에는 다른 것으로 하되 찬물을 원칙으로 하고 찬물이 없으면 따뜻한 물로 한다. 물이 충분치 않을 경우 머리 위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 번 뿌린다."
- 로마카톨릭(천주교회)이 침수를 변질시킨 주범 ! - A.D. 1311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동북방에 있는 라벤나(Ravenna)에서 제 228대 교황 클레멘트(Clement) 5세가 천주교 지도자 회의를 통하여 침례를 적례로 다시 바꿈: 뿌림(그러나 물이 흘러야 한다)을 합법적인 침례로 인정하였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엡 4:5);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고전 12:13);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벧전 3:21).
이 과정 속에서 '침례'가 세례로 바뀌어졌고, '유아세례'라는 의식이 교회 속에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사제가 '영아세례'(영세)를 주게 되면, 그 아이가 거듭나서 천국에 간다고 가르쳤습니다. '유아세례'란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사리분별을 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가요?
2. 유아세례에 대한 반박
개역성경의 사도행전 8:37을 보면.... 한 번 찾아보기 바랍니다. '37절'(없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만일 8:37이 원래부터 없었다면, 38절이 37절이 되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누군가가 자신의 교리나 믿음 등을 성립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그 구절을 빼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앞뒤 구절을 살펴보면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살펴봅시다.
그 때에 빌립이 입을 열어 바로 그 성경기록에서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전하니라. 그들이 계속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거침이 있으리요? 그러자 빌립이 말하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할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 대답하여 말하되,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이에 병거를 세우라 명한 후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내려가 물에 들어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행8:35~39a) - 마차의 물?
위의 성경 구절이 보여주듯이, 성도들이 침례를 받기 전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것 없이 교회를 다닌 연수에 의거하여 세례를 주어 그것을 어떤 의식화하는 것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아들은 결코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없고, 신앙고백을 할 수도 없으므로 '유아세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B. 침례- 그 성경적인 의미
1. 침례의 기원
1) Proselyte Baptism(행6:5)
2) Baptism of Repentance(막1:9~11)
3) Believer’s Baptism(마28:18~20)
2. 침례의 정의
침례(Baptism)란 헬라어 동사는 ‘밥티조’(βαπτίξω)이고, 명사는 ‘빕티스마’(βαπτισμα)이다. 영어 동사로는 뱁타이조(Baptizo)이고, 명사로는 뱁티즘(Baptism)입니다. 이 말의 뜻은 'to dip', 'dying'으로서 ‘깊게 들어가다’.‘물감을 들이다’라는 의미니다. 그러므로 침례란 말은 ‘잠긴다’, 즉 물속에 잠긴다는 뜻이다. 즉 침수침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침례는,
1) 구원 받은 사람-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2) 모두 예수님의 제자(따르는 자)가 되어
3) 새로운 언약(New Covenant) 공동체에 가입하게 하였던
4)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예식이다.
세례는 헬라어에는 “뿌리다”(rantidzo)와 “붓다”(cheo)를 의미하는 다른 특정한 단어들을 갖고 있다. 사람의 전통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편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 ‘세례’라는 말로 한글로 번역된 것은 초창기 한국 목회자들이 영어로 표기된 성경을 번역함이 있어서 영어로 표기된 baptism을 침례로 번역하지 않고 세례로 표기한 이유는 모인 목회자들 가운데 침례교 선교사였던 말콤 펜윅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수님이 받으신 것이 침례인데 그것을 세례로 바꾼 것은 비성경적이며, 사람이 만든 전통을 따라 편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 “씻다”가 밥티조(baptidzo)에 사용될 때, 그것은 반드시 그것과 더불어 특정한 의미 “침수에 의해서”를 동반한다(Campbell-Rice Debate, p. 99)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침례를 받기에 적법한 사람
-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를 주로 고백한자: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
- 회개하는 신자 -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믿기로 한 지적인 동의에는 진심어린 삶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C. 침례의 중요성
1. 왜 침례를 받아야 합니까?
1) 그리스도 께서 세우신 본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막1:9
2) 예수님께서 침례받을 것을 명령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3) 침례는 내가 진실로 신자 임을 나타냅니다.
“또 회장당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행 18:8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 2:3
2. 침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 복종 - 침례는 그리스도께 첫 복종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침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다. 사람이 이 발표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면, 그가 자기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 .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행 2:37-38;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행 2:41).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과 부활을 나타냅니다.
“...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
“저희가 침례로 그리스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2
♣ 씻음 - 침례는 죄 사함을 위한 것이다. 물과 씻음의 관련성은 전 세계적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와 침례의 물로 죄 사함을 관련지으셨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 2:38;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 22:16).
♣ 연합 - 침례는 그리스도의 인성과의 연합이다. 침례 때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몸에 더하여진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전 12:13).
♣ 새 생명으로 행함의 시작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3. 누가 침례를 받아야 합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1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행 8:13下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 행 8:12
주의 만찬에 대해서
A. 주의 만찬의 의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생일을 기억하라고 결코 요청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기억하라고 교회에 두 가지 확실한 예식을 주셨습니다 이 두 예식이 바로 침례와 주의 만찬입니다. 주의 만찬은 성도들에게 위대한 영적 진리를 분명히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주의 만찬은 무엇입니까? (고전 11: 23-26)
1) 복잡한 예식이 아니라 단순한 예식입니다.
“...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23절)
2)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4절)
3) 상징하는 것입니다.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25절)
4) 믿음의 고백 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6절)
2. 누가 주의 만찬에 참여해야 합니까?
이미 믿는 사람들만 참여합니다(막 14:22-26)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전 11:29
3.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전 11:27,28)
1) 자기 자신을 살핀다. (고전 11:27)
2)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요일 1:9)
3) 다시 헌신한다. (롬 12:1)
4) 관계를 회복한다. (마 5:23-24)
4. 언제, 그리고 얼마나 자주 주의 만찬 예식을 거행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언제 , 그리고 얼마나 자주 주의 만찬 예식을 거행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주의 만찬식을 목요일 밤에 행하셨습니다. 매 예배 때마다 하는 것이 좋으나, 최소한 일년에 두세번정도 주의 만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침례교회의 기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침례교인은 현재 미국 교인 수의 약 20%에 해당합니다. 미국 교인 5명 중 한 명은 침례교인입니다.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설교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 역시 침례교인입니다. 1792년 영국에서 최초로 인도 선교사로 파송된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도 침례교 선교사였습니다. 또 1812년 미국에서 최초로 태국 선교사로 떠난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부부와 루터 라이스(Luther Rice) 선교사도 침례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침례교인이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믿는 것과 침례교인이 믿는 것이 같다는 것을 알고 침례교선교사가 되었습니다(선교세계 1998년 여름호 p.2).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Jimmy Carter)도 침례교인입니다. 침례교회는 개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 즉 구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에게만 침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것도 물 속에 잠기는 침수례(Baptism)를 베풀고 있습니다. 침례교회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두고 있습니다. 침례교회는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교회 위에 교회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왕이라도 개인의 인격과 신앙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기에 많은 침례교 조상들의 투옥당하고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침례교회의 뿌리와 그 역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두번째로 침례교회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A. 침례교회의 뿌리와 역사
대부분의 교파들은 창시자가 있습니다. 장로교는 존 칼빈(John Calvin), 감리교는 존 웨슬리(John Wesley), 루터교는 마틴루터(Martin Luther)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구세군은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대장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침례교는 창시자가 없습니다. 굳이 창시자를 찾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 뿌리를 침례 요한에게서 찾습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16세기 중세 유럽에서 일어난 재침례파(Anabaptist)나 메노나이트 운동(Mennonite Movement)에서 찾습니다. 재침례파 중에 맨처음으로 침례를 준 사람은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이었습니다. 당시만 하여도 침례는 감히 생각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레벨은 불안과 압박이 교차하는 가운데 1525년 1월 21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그를 따르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인 게오르게 블라우로크(George Blaurock)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게오르게 블라우로크도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복음을 가르치며, 믿음을 지키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몸소 서약하였습니다. (재침례교도의 역사 p. 34-35, 요단출판사 간). 이들은 영혼의 자유를 외쳤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교회의 전통도 거부하였습니다. 성경 외에는 교회의 그 어떤 권위도, 어떤 사람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특별히 재침례파 중 한 사람인 빌헬름 로이블린(Wilhelm Reublin)은 유아 세례(침례 Infant Baptism)를 강력히 거부하여 유아 세례의 불타당성을 제일 먼저 설교한 사람입니다(재침례교도의 역사 p.40). 그리고 인간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지며, 침례는 구원받은 사람만이 받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재침례파의 한 사람인 펠릭스 만츠(Felix Manz)같은 사람은 유아 침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물수장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물수장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자의 침례만이 참된 침례라”고 선언하였습니다(재침례교도의 역사 p.66-67). “그에게 사형이 언도되어 그가 림마트의 강어부의 오두막집을 향해 내려갈 때, 그는 읍사무소의 작은 배로 옮겨져 양팔과 양다리가 묶였지만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고(‘당신의 손에, 오 주님, 나는 나의 영혼을 위탁하나이다’), 잠시 후에 차가운 강물이 그를 덮어 버렸다. 그 날이 바로 1527년 1월 5일(토) 오후 3시였다”고 했습니다(재침례교도의 역사 p66-67). 그 후 그레벨에게 침례를 받은 게오르게 블라우로크는 티롤(Tyrol) 에서 화형을 당했는데(재침례교도 역사 p.67), 그 이유는 “그가 교황이 내린 사제직을 버렸고, 유아침례를 거절하였으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침례를 설교하였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에 대한 경배와 기도를 거부하였기 때문” 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 유아 침례를 반대한 발타자르 휘브마이에르(Balthasar Hubmaier)는 쯔빙글리에게 혹독한 미움을 받았다. 당시 개신교 단체들도 재침례파들을 거칠게 대하였고, 결국 쯔빙글리 같은 사람도 휘브마이에르에게 고문을 가하였으며, 1528년 비엔나에서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 당시 휘브마이에르가 주장한 것은 “침례는 반드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그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선행되어야 하며, 회심자는 자신의 믿음과 뜻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수단으로 물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죄목이었습니다(재침례교도의 역사 p.108). 그 후 한스 후트(Hans Hut), 셀베투스(Servetus) 같은 사람들도 화형을 당하였습니다(재침례교의 유래, 생명의말씀사 간, P.14)
그런데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한 위클리프와 문예부흥의 영향, 인쇄술 발명이 영국에서는 영국 국교 탄생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국 왕 헨리 8세는 그의 아내 캐서린(Catherine)과 이혼을 하고 앤 볼레인(Anne Boleyn)과 재혼을 하였습니다. 캐서린에게서 난 딸 메리 공주밖에 없었기에 왕위 계승을 위해 불가피하게 재혼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로마 교황 클레멘트 7세(Clement IIV)와 정치적 대결이 되었고, 결국 영국 가톨릭을 영국국교(Episcopal)로 만들어 통치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국교도 가톨릭을 답습했기에 로마 가톨릭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영국 국교의 권위에 대항하는 비국교인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영국의 국교 안에 남아서 정화작업을 해야 한다는 청교도들(Puritans)과 이러한 보수적인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스스로 독립적인 조직을 만든 분리주의자들(Separatists)이 있었습니다.
이 분리주의자들 가운데 존 스미스(John Smyth)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의 권위에 심취해 있었기에, 영국 국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영국으로부터 추방당하여 1609년 37명의 회중을 이끌고 화란으로 갔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자기도 침례를 받고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침례의식을 통해 화란에서 영국침례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이것을 최초의 침례교회 뿌리로 보고 있습니다.(침례교회의 유래 p.21)
그 후 존 스미스와 함께 있었던 토마스 휠위스(Thomas Helwys)가 1612년에 다시 영국 스피탈필드(Spitalfield)로 돌아와 최초의 영국침례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불법의 비밀에 관한 소론](A Short Description of the Mystery of Iniquity)이란 책자를 발행하여 군주에게 도전하였습니다. 물론 자신의 주장으로 투옥되고 죽을 것을 알았지만 마음속에 타오르는 진리를 제임스 왕 앞에 나가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돌발적인 휠위스의 죽음이 당시 영국 베드포드침례교회 목사였으며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John Bunyan)을 탄생케 하였습니다.
1620년경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올 때 개인의 신앙과 예배의 자유를 찾는 분리주의자들도 신대륙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로저 윌리엄(Roger William)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1636년 12명의 남자와 가족들을 이끌고 로드아일랜드 주(Rhode Island)에 정착하여 침례를 행하는 최초의 미국 침례교회인 프로비던스침례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후 신앙의 자유 때문에 영국에서 추방당한 존 클락(John Clark)에 의해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에 두번째 미국침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후 침례교회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급속도로 성장하였고, 유아 침례(=세례)를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재침례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재침례파들은 “교회의 골칫거리” 혹은 “오류 투성이인 사람들” 혹은 “이단의 범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멸과 채찍과 박해 속에서도 침례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여 1684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중에 세번째로 찰스톤침례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기록에 의하면 미국 대각성운동과 개인 구원의 체험을 주장하는 복음주의 사람들의 영향으로 침례교회는 1733년에 500명, 1774년에 35,000명 1800년에 100,000명, 그리고 1990년에 남침례교인만 16,000,000명(미국의 침례교인들은 약 35,000,000명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1761-1834), 설교의 왕 찰스 스펄전(1834-1992), 오늘날엔 빌리 그래함(Billy Graham)과 같은 훌륭한 침례교인들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B. 침례교회의 주장
지금까지 우리는 침례교회의 뿌리와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침례교회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성경의 사람들(The People of the Bible)
흔히 침례교회 교인들을 가리켜서 성경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성경만이 유일한 신앙의 근거가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침례교는 교회의 전통이나 인간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그것을 성경 위에 두지는 않습니다. 교황이나 군주라 할지라도 성경보다 앞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 그 누구에게도 지배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침례교는 신앙고백이 있지만 성경처럼 받들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시간에 사도신경(Apostle’s Creed)을 암송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경의 내용을 간추려 놓은 것이라 해도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침례교회는 성경만을 인정합니다.
2. 회중정치를 하는 사람들(Congregational church)
장로교는 총회, 노회, 당회가 구성되어 위로부터 다스리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자체 내에서도 당회가 모든 권하을 가지고 전 교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감리교는 감독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감독정치란 감독의 하향식 명령으로 움직여지는 교회를 말합니다. 또 천주교는 교황이 다스리는 군주정치입니다.
하지만 침례교는 회중정치입니다. 회중정치란 회중 한 사람 한사람, 즉 침례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연합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침례교회는 목사나 집사가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교인들이 주인입니다. 교인들에 의해서 모든 일이 결정되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목사나 집사는 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돕고 섬기는 사역을 하는 자들이지, 다스리는 자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침례교회에도 지방회(Association), 주총회(State Convention), 전국총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개교회를 다스리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개교회의 요구사항을 도와줍니다. 그들이 개교회 일에 개입하여 명령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침례교회는 개교회가 자체적으로 하나님과 성경 앞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움직여 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침례교회 위에 침례교회가 없고, 침례교회 아래 침례교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침례교회는 다른 침례교회와 지방회, 주총회와 유대 관계를 맺지 않는 독립기관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와 동역자 목사님과의 협동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북미주 내의 선교와 국제 선교를 위해 협동선교 프로그램(Cooperative Program)을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가진 우리 침례교회는 미국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 교회와 국가의 분리(Separation from church and State)
침례교회는 한 사람의 신앙과 자유를 매우 중요시해 왓습니다. 군주나 교황일지라도 한 사람의 신앙과 자유를 구속할 수는 없다고 믿어 돈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국가가 신앙의 자유를 구속할 때 이어 대항하여 투쟁을 감행 한 것입니다. 영국이 국교를 가지고서 신앙의 자유를 구속할 때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자유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엄연히 국가는 교회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에 낼 세금을 내지 않거나 중단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이사에게 바칠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께 바칠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는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싸움터에 나가지 말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다만 신앙은 국가가 다스리거나 강제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국가가 종교를 등에 업거나 종교가 국가를 등에 업을 때 생긴 많은 문제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4. 신자의 구원보장(Believer’s eternal Security)
침례교회 교인들은 “한 번 영생을 받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 보장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내게 오는 자는 결단코 쫓아내지 아니한다”(요 6:37)고 말씀하고 있으며, “결코 내 손에서 빼았을 자가 없다”(요10:28-2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은 사람은 결코 영생을 잃어버리지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들은 마귀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닙니다(요일 3:8-9). 그러나 감리교에서는 배도자(Apostasy)가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장로교에서는 구원자와 멸망자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5. 모든 신자의 제사장 직분(All Believer’s Priesthood)
모든 신자의 제사장 직분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제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 2:9)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마음대로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교제할 수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든 신자들은 제사장이 되어 중간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서도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고 기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제하고 기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말해, 전도를 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우리 모든 신자들은 사역자, 즉 평신도 사역자라는 말씀입니다. 침례교회에서 구원받은 성도면 누구나 할 것없이 주님의 사역자로 세워 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은 제자장들, 즉 평신도 사역자들을 많이 세우는 교회가 소망이 있는 교회들입니다.
6. 목사와 집사의 직분
침례교회의 또 하나의 특성은 목사와 집사 직분밖에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목사와 집사 직분에도 권력이나 우월성이 전혀 없습니다. 집사 위에 목사가 있고, 목사 밑에 집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직분이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기(벧전 4:10) 위해 세움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합니다. 섬기거나 봉사하지 않는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미국감리교회도 목사와 집사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감리교회도 장로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침례교회에서는 목사(Pastor)와 집사(Deacon)만을 세웁니까? 성경에 나오는 목사(Pastor), 장로(Elder), 혹은 감독(supervisor)은 한 가지 직분의 다른 기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행 20:17, 28; 벧전 5:1-2). 목사라는 단어는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사용된 말입니다. 따라서 목사는 양 떼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고 그들의 필요를 제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감독이란 단어는 목사의 다른 측면의 사역, 즉 행정적인 지도자로서의 기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슈퍼바이저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또 장로란 단어는 목사로서 경험이 많고 존경받을 만한 연장자라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 명칭은 각각 다른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직분을 설명하는 다른 명칭이라는 사실입니다. 장로교 헌법에도 보면, “장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설교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하고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한다”(워싱턴 장로교회 20년사 p.86)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침례교회는 “어떠한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 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떠한 직분을 자졌든지 열심히 사역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참고
재침례파(Anabaptist):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시작된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도 중생한 후에 다시 침례를 받게 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안디옥의 그리스 도인들처럼 다른 사람들 특히 재침례교도들을 부인하려는 자들이 붙혀준 이름이었다(그리스 도교 대사전, 902p.).
디다케(Didache): 1873년 그리스 정교회의 주교 필로테오스 브리엔니오스가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성묘 수도원 일명, 예루살렘 수도원 도서관에서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란 양피지에 적힌 짤막한 사본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사본은 100년경 시리아 지방에 있는 어느 시골 교회의 그리스도인이 편집한 교회 규범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