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권세 (요 1:1-5)       08-17-2008 설교요지       이 원희 전도사


 

요한복음의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우리는 그가 예수 믿기 전과 성령받은 후를 살펴 볼 때 많은 삶의 변화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신약 성경 안에서 특이하게도 거의 모든 가족의 이름이 다 성경에 등장합니다.
아버지 세베대(막 1:19), 어머니 살로메(막 15:40), 형 야고보 그리고 자신인 요한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기전 형인 야고보와 요한은 성격이 상당히 급했나 봅니다. 예수님이 우뢰의 아들이라 부르실 정도 였습니다.
그 두 형제는 언제나 메시야를 기다리는 그의 민족들 중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메시야를 찾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엔 침례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가 메시야인줄 알았던 거죠.
그러나 후에 요단강에서 세상짐 지고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외친 침례요한을 떠나 그 어린양의 발자취를 쫓기 시작 했었으며, 잠시 떠나기는 했으나,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다시 부르실 때 자신의 부친과 생업을 떠나 예수를 쫓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열성적으로 예수님을 로마의 군정으로 부터 해방시킬 정치적 리더로 생각했는지 자신들의 어머니인 살로메 까지 로비에 등장해서 형을 우편에 자신을 좌편에 놓아 달라는 청탁까지 합니다.
그 때 두 형제는 예수님으로부터 내 잔을 마시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며, 형제는 그것을 받아 들였습니다. 진정한 의미를 생각지도 않았고 깨달을 수도 없었던 상태였음에도 그들은 받아 들였습니다.
특별히 두 형제는 언제나 주님 곁에 가까이 따르는 특권을 얻었으며 야이로의 딸사건을 통해서도(눅 8:49-56),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도(마 17:1-8),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막 14:32-42)에서도 그의 발자취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자신의 12 제자들 사이에 속한 사람이 아니란 이유로 내치는 실수를 합니다.

정열적이었으며 자신의 야망을 위한 거대한 추진력과 가정의 후원을 받고 있었지만 그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난 후 변하였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을 강조했는지는 그의 서신들인 요한 1서, 2서, 3서를 통해 알 수 있으며 스스로 그리스도의 곁에서 배운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베푼 사랑이 커서 그는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우기 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 복음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부분은 오직 한 군데 자신이 실수 했던 그 말이 등장할 때 뿐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요한은 베드로의 보좌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요한이 적은 요한복음을 오늘 살펴보기 소망합니다.


1장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에 대해 요한은 말합니다.
태초가 있기 전 부터 말씀이 있었으므로 말씀의 영원성을 드러냈고,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사실로 말씀의 실존성을 드러냈으며, 하나님과 동등됨을 드러냄으로 말씀의 신성을 강조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요1:1은 말씀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동일시 하며 그 절대적인 삼위일체의 권위를 인정하게끔 합니다.
가끔 보면 우리는 우리 삶 가운데 권위주의를 너무 싫어하는 나머지 권위를 파괴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권위란 Authority며 바로 하나님이 권위 이십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절대 쇠 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이신 말씀 역시 그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계십니다.


1장3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에 대한 강조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에 대해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임을 부각합니다.
1장4절과 5절에서는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데 생명이란 단어는 요한복음서에 34번이나 등장하며, 그 중 11번이 영원한 이란 단어와 연결되어 영생이란 단어로 표현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은 아담에게 주신 것처럼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명은 처음에는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결코 끊어질 수 없고 단절되어 질 수 없는 숨이 죄로 인하여 끊겨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이 더 이상 영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빛 가운데만 거했던 삶을 살고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린 모두 어둠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은 결코 빛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그 어둠은 경제적인 것 일수도, 육체적인 것 일수도, 가족간에서 있는 것 일수도, 이웃간에있는 것일 수도, 친구, 친척간에 있는 것일 수도 있으며, 질병과 연관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외에도 수없이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우리를 가두고 있습니다. 그 어둠 속에 있을 때에는 빛을 알 수가 없어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도 포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어둠을 이길 수 있는 해결책을 이미 주었습니다. 바로 빛이 어둠가운데 비추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여러분의 일주일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를, 혹은 그 빛을 모르는 사람들이 스쳐가고 있습니까?

이번 주에는 단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빛으로 거듭난 여러분을 보고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입을 열어 그들에게 빛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전해야 할 것은 어둠을 전혀 이해 못하는 저들을 도와야 하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들은 듣고 깨닫기 전까지 이해하지 못할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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