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기뻐하는 사람들 ( 행 5:33-42)       10-05-2008 설교요지

 

 

1.우리 인간의 소원은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 목적과 꿈이 이루어질 때, 원하는 것을 소유할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밀어닥친 고난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고난을 이기려고, 병원, 술집, 노래방…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고난의 본질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해결의 방법입니다.
많은 자들이 어찌 하나님이 그럴 수 있어 라고 주님께 항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의 대부분은 내가 잘못해서 겪는 것입니다. 교통법규를 어겨서 사고를 내어 겪는 고통입니다. 알코올 중독이 되어 가정이 깨어집니다. 담배와 약물을 하여 건강으로 고통받고, 도박해 재산을 날리고 가정에 불화가 나고, 남의 물건 훔쳐 어려움 당하고… 이때는 자기의 잘 못을 시인하고 돌이키고 새롭게 정상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죄와 악 때문에 일어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 때는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가 주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해야 겠지요.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방해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마귀의 유혹이 올 때에, 너희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잘못이 없이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의 경우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아라(볟전2:19-21) 하십니다.

대부분의 경우 시편기자의 고백과 같습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인해 내가 주의 율례를 배웠노라(시119: 71).
롬5: 3절하에서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가져오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한 고난도 있다는 것입니다.

8: 17-18에는, 너희가 자녀로서 영광을 받았으니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리니 이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고 약속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고난이 올 때 초대교회 사도들은 어떻게 임했는지 살펴보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2. 본문

 

1). 33절,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예수를 죽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 너희 죄를 회개하여라.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라.” 이 귀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은 자들은 회개하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받지않고 노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최고 종교지도자인 그들은 사도들을 죽여버리자라고 죄의 길로 들어갑니다. 많은 경우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반대합니다.

어느 목사님, 왜 단기선교를 가서 문제를 일으키고 죽고 그러지. 국내에서 열심히 전도나 하고 교회에서 헌신하지… 그러나 본인이 선교지를 다녀오고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선교지를 다녀온 자가 그 마음 속에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고 선교사님을 후원하게 되고, 그 씨가 자라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회개했다고 합니다. 선교에 열정을 가졌고 파송 선교사만 40명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주님의 뜻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2). 이 때 한사람이 나타납니다.34절-39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힐렐(탈무드의 대부분), 그의 제자가 바울.(행22;3)

35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2가지 예를 듭니다. 이전에 드다(나는 예언자.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겠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다.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혁명가, 하나님 믿는 자들이 로마 정부에 순종해 세금내는 것은 비겁한 자)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다.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것이야.

그의 중재로 사도들은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그는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존경받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로 온 것만이 영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3). 40절,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아주었습니다. 사도들의 고난이 나옵니다. 40에 하나 감한 태장을 말합니다. 가죽 채찍에 쇠덩어리가 붙어있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문입니다. 이로인해 많은 자들이 죽는다고 합니다.

 

4). 사도들의 반응입니다. 41-42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들은 이러한 고난과 핍박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 우리는 이 핍박을 받기에 합당한 자들이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인정하시면 이런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까? 풀려나서 기쁜 것이 아니라예수 이름으로 고난받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다고 고백합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죽음의 지경까지 고난받았지만, 날마다 어디서든지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말씀과 경배와 기도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고, 집에서는 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소망을 나타내야 합니다.

 

 

3. 초대교회 사도들은 고난을 피하거나 없애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달게 받았고 그리고 이겼습니다.
롬 8: 35-38에,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를 아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 이름과 교회와 신앙 때문에 능욕받고 핍박을 받아보면 압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주님을 떠나는지, 아니면 주님 사랑해 이 고난을 받고 이 고난을 받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이 고난을 이기며 주님을 찬양하고 고난을 사랑하며 주님 앞에 서는 날로 인해 기뻐하는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감당할 수 있다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터툴리안은 핍박하는 로마제국의 통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를 죽이시오 우리를 고문하시오 우리를 정죄하시오 우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시오 …당신들이 우리를 소탕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자랄 것이요 그 씨는 그리스도 인들의 피요.” 바로 그들의 고난의 피의 증거로 로마는 무너져 내리고 복음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약속하셨습니다.
마5: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 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때는 너희에게 복이있나니 기뻐하고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사도 바울도 고후 11: 23절하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하였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고, 3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3번 파선 하였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었습니다.
갈6: 14, 17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노라.”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그는 고난을 다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고난 중에서도 일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믿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 아버지,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 주십시오.
영광만 받고 고난은 받지 않으려는 모습은 아닌지요.

당신과 교회의 작은 일도 피하려고만 한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고난이 내게 임할 때 내 죄와 잘못으로 임하는 것이면 회개하고 돌이키는 심령을 주십시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주의 율레를 배우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이라면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고난을 통해서 주님 이름에 영광 돌리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고난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고난 너머에 주님의 임재와 내가 받을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고난의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시기를 에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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