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단 3:12~18
제목: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설교자: 신성일 목사
서두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 중의 하나인 유브라데스 강 유역에는 함므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함므라비가 건국한 바벨론이라는 제국이 있었습니다. 이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시대에 국력이 급격하게 강화되면서 국토가 확장되고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도시도 건설되었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오늘날로 말하면 미국과 같은 힘을 가진 최강의 강대국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벨’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본서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하나님께서 세계의 주권자임을 밝히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왕하 25:12~17에 보면, 당시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고 모든 성전 기구들을 강탈한 후에 자신들의 신이 여호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세계에 선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6:4 말씀에 기록되었듯이 여호와 유일신 사상은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던 백성들은 커다란 고뇌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다니엘은 본서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방의 거짓 선지자나 우상과는 달리 역사를 주관하시며 통치하시는 유일신임을 밝히기 위해 일련의 기적과 권능을 소개하고 미래의 역사 전개에 대해 계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소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두라 평지에 높이 27M, 폭이 3M나 되는 금으로 된 자신의 거대한 신상을 만들어 놓고, 모든 백성들에게 이 신상에게 절을 하며 경배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는 이제 막 정복한 세계가 혼란한 관계로 민족들을 통일해 보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정책이었습니다. 두라 평지에서 펼쳐질 이 신상 낙성 예식에는 정치인, 법조인, 각 도의 수령들, 경제인, 교육가, 관료들 등 나라의 주요한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제 나팔이 울리면 모두 다 금 신상에 절을 해야만 합니다. 이윽고 나팔과 함께 모든 악기들이 울려퍼졌고, 두라 평지에 사람들이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우뚝 서서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다니엘의 동료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었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단 1:3~7에 보면,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함이었더라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는 말씀과 3:12에 보면, “이제 유다 사람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이란 말씀처럼 궁 안에 살면서 왕과 함께 국사를 논하는 귀중한 관원이고 한 도를 다스리는 수령이었습니다. 이런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으나 우상에 절하여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이 세 사람은 당당하게 서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신상 낙성식이 어떤 자리입니까? 이 자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느부갓네살 왕이 혼란한 정국과 나라를 하나로 묵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모아놓고 거행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뜨거운 풀무 불에 들어가서 한 순간 재로 변해버려야만 하는 생사의 귀중한 자리였습니다. 비단 생명을 떠나서 그저 절만 하는 예식 정도로 생각하고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만이 우일하신 하나님이시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자신의 인생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리라는 각오로 우상 숭배를 철저히 끊어냈습니다. 신상에 절하지 않는 이 세 사람을 발견한 그의 정적들은 곧 바로 왕에게 고합니다.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단 3:8)고..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이 세 사람에게 묻습니다.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단 3:14-15).
느브갓네살 왕은 당시 온 세상의 절대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본따 만든 우상이 이 세상 어떤 신보다 뛰어나고 능력이 있음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말합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이런 절대 권력자의 말 앞에 감히 그 누가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거부하면 바로 죽임을 당할 분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당당하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사드락 , 메삭, 아벳느고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했습니다. 이미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킬 것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세 사람의 놀라운 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이면 불속에서도 살아날 것이고, 만일 그것이 뜻이 아니면 그대로 불에 타 죽어도 괜찮다'는 단호한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세상과 타협을 하거나, 적당하게 넘어간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왕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 불, 즉 용광로와 같은 불구덩이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타지 않고 구원되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교훈
본문 속의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항상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됨으로 이방 신이 승리한 것 같은 상황에서 다니엘은 나라와 왕의 운명을 포함한 모든 인간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다니엘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우상의 음식인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채식만으로도 더 건강한 육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장에는 다니엘이 바벨론의 박사, 술사, 점장이, 술객들이 해몽하지 못하던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였습니다. 3장에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불 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4장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왕권을 7년 동안 빼앗고 짐승처럼 살게 하십니다. 5장에는 하나님은 벨사살 왕의 잔치 자리에서 자신이 통치자이시며 약속을 이루는 분임을 나타내십니다. 6장에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구원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내용들은 모두 다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통치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속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의 총애를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우상에게 절만 했더라면 그들의 인생은 평탄대로였습니다. 가문을 이어 힘을 쥐고 나라의 정치를 이끌 사람들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부와 명예를 보장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한 분 참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것이 옳은 일입을 알았습니다. 왜냐면 하나님만이 우주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믿으십니까? 세 사람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찬양.
하나님은 지금 두라 평지에서 거행되는 느부갓네살 신상 낙성식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의 자신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시고 세상의 주관자이심을 드러내시고 계시며, 유랑하고 억압받고 포로된 유다 백성들에게 항상 함께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세상에 지쳐 세상과 타협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유다백성들에게 잃어버렸던 자신을 항상 절대 신앙을 불일 듯 용솟음치게 만드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민 생활 가운데 힘들고 고달프고, 배고프고, 연약하고 답답하고, 설움이 북받쳐 오르고, 사업이 안 되고, 일이 꼬이고, 화가 나고, 슬프고, 하소연 할 때도 없고, 오해가 많고, 괴롭고, 외로운 일이 많이 있지요?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이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가복음 20:36에 보니까,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슬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도 슬퍼하십니다. 사42:3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갈대와 같이 연약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믿음시기바랍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으며 언제나 나를 공평과 은혜로 지키셨습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찬양.
그리고 우리에게 속삭이십니다. “내가 너를 만들었단다.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여러분, 나에게 어떤 환란이나 유혹이 온다하여도 흔들리지 마세요. 잠 3:6절에 보면,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4:13에 보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이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우리의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시고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본문 속의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두 번째는,
2. 항상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먼 옛날 어떤 마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답니다. “산 위에 동굴이 있는데 그 동굴 안의 샘물을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군요.” 이 소식을 들은 바보 삼형제가 이 샘물을 마시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샘물을 마시러 가려면 한 가지 약속이 필요했습니다. 동굴 안에서는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면 바로 죽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바보 삼형제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큰 형이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예들아 여기서 말하면 죽어. 알았지? 말하면 안 돼”하고 죽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둘째가 “그것 봐 말하면 죽잖아”하고 죽었습니다. 바로 그 때 세 째가 “어, 나만 살았네.” 하고 죽었습니다. 시간이지나 바보 삼형제가 돌아오지 않자 동내 사람들이 이 동굴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동굴 앞에서 동굴 안에서는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 했습니다. 드디어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장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한 번 더 다짐을 시키기 위해서, “여러분 여기서 말하면 죽습니다.” 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 동네 사람들도 이장의 말에 모두 “예” 하고 모두 죽었답니다. 참 우스운 얘기입니다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은 영원히 살기를 갈망하며 무언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저는 2007년 9월 20일자 인테넷판 연합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19세기 말 태어난 세계 최장수 남성인 일본인 다나베 도모지 할아버지가 18일로 112회 생일을 맞아 기자들에게 영원히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1895년 9월18일 태어난 다나베 할아버지는 2007년 1월 푸에르토리코의 에밀리아노 메르카도 델 토로(당시 115세)가 사망한 후 세계 최장수 남성으로 2007년 6월 기네스 세계기록 인증서를 받은 바 있습니다. 다나베의 고향인 일본 규슈(九州) 미야자키현(縣) 미야코노조시(市) 시장이 18일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할아버지에게 화환과 축하 편지를 선물하며 몇 년간 더 살고 싶냐고 묻자 "끝없이" 살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금욕적 생활을 하는 다나베씨는 현재 건강이 좋고 일기도 쓸 정도여서 조금 더 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는 술을 피하는 것이 자신의 장수 비결이라고 그간 자주 말해왔으며 건강을 돌보기 위해 야채를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적게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토지 측량사였던 그는 현재 다섯째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으며 슬하에 8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참고로 기네스 기록에 따르면 현재 세계 최장수 여성은 1893년 4월20일 태어난 미국 인디애나 주에 사는 에드너 파커로 올해 114세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만 히9:27에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90:10 보면,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죽는 시기만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에서 우리는 중요하게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9:27의 끝 부분의 말씀입니다. 죽는 것이 정해져 있는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이후에 천국의 삶과 지옥의 삶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이며?, 누구를 위해서 죽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본문 속의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기로 합니다. 세 친구들이 들어갈 풀무 불은 매우 뜨거운 불이었습니다. 19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은 너무 화가 나서 그 풀무 불을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했다고 했고, 그 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22절에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 불안으로 던질 때에 붙잡고 있던 군인들이 불에 타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토록 뜨거운 불 속에 던져 죽게 되는 잔혹한 상황 곳에서도 세 친구는 살기 위해서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불속에서라도, 어떠한 고난 속에서라도 구원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구원의 확신은 결국 27절에서 보듯이 머리털 하나도 그슬리지 않고, 불에 탄 냄새조차 찾을 수 없는 온전한 상태로 풀무 속에서 건져냄 받았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불 속에서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였습니다. 세 친구의 하나님을 향한 충정은 29절에 보니,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이방인이요, 우상을 숭배하던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유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끔 만들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 역사에는 기쁨도 찾아오지만 슬픔도 찾아옵니다. 행복이 오는가 하면 불행도 옵니다. 우리는 기쁠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며, 슬플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슬픈 일이 있다고, 나에게 고난이 닥쳤다고 하나님을 떠나시겠습니까? 그럴 때 더욱 더 그 고난과, 슬픔과 맞서 싸우시기 바랍니다. 고후13:5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어느 곳에서라도 자신의 구원의 확신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마 5:16에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신실한 믿음의 행동으로 믿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도록 해 봅시다.
본문 속의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세 번째는,
3.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풀무 불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면서 느브갓네살에게 말하기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을 믿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풍전등화’,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은 목숨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 진정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본 영화가 생각납니다. 미국 영화 "The Storm" 고기 잡는 어부들이 바다에 나갔다가 커다란 허리케인을 만나게 됩니다. 거대한 파도가 배를 삼킬 듯이 다가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동요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 긴박하게 의논합니다. 옥신각신하다가 의견이 일치합니다. “저 허리케인과 맞싸워 뚫고 가자. 허리케인의 중앙은 오히려 안전하다. 우리가 저 허리케인의 중앙을 따라가면 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부로서 저 파도에 죽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 그 다음 어떻게 됐느냐고요?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큰 복을 넘치도록 받게 합니다.
히11:29~34에 보면,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며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고"
그러나 믿음은 고난으로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히11:25~37에 보면,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 하였느니라"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할 때는 하나님을 믿고 패배와 고난을 당할 때는 신앙을 버리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면 우리는 아직도 미숙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군중들에게 환영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같은 군중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으라고 아우성을 치는 배반의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바울도 이적을 나타내어 승리할 때가 있었는가 하면, 죽음의 태장을 여러 번 맞고, 옥중에서 고생하고, 돌에 맞고, 쫓겨 가야 하는 수모와 굶주림의 시절도 있었습니다. 승리할 때는 신자가 되고 실패할 때는 신앙을 버리는 것은 신실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하실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응답 없는 침묵으로 수많은 세월을 보내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명예도 주시고, 성공과 형통을 주실 때도 있지만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고통, 환난, 시험, 핍박이 찾아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바로 그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설령 내가 사업이 잘 안되고 고난이 계속되고 남들보다 가난하고, 못났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시인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 바울 사도, 욥, 노아, 아브라함, 이삭, 스데반 집사, 주기철 목사님..... 과거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생활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생활임을 기억합시다.
맺음말
초대교회시대는 교회에 대한 많은 핍박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A. D. 69-155년에 살았던 서머나의 감독이었던 성 폴리캅이 있었습니다. 그가 순교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자기를 체포하러 온 병졸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준 뒤 화형대 앞에 섰습니다. 그때 호민관이 폴리갑에게 지금이라도 배교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나는 86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왔고 주님은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왕 이시요, 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겠는가?" 하고 화형의 장작더미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화형을 집행하는 형리에게 외칩니다. "그대들은 한 시간 가량 사르고 없어질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여 장차올 심판의 불을 모르는가? 왜 이리 지체하고 있느냐 어서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라" 그는 아주 평화롭게 찬양을 불렀으며,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서는 천사들이 그에 화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의 진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진보를 하나님께 보여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악세서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서 그 믿음을 사용하여 승리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그런 믿음을 보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일 5:4에 보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 나왔으니 믿음을 통하여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숙한 믿음의 진보를 나타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입니까? 명예입니까? 지식입니까?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우선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우상을 끊어내야만 합니다. 우리는 어떤 유혹이 온다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지켜내야만 합니다.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지면 믿음에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을 받아 누리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이제 이 믿음의 진보는 나와 우리의 자녀들, 나아가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나의 이웃들로 나타나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여러분의 자녀가 있나요? 지금 여러분 곁에 이웃이 있나요?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셨고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은 천국으로 악인은 지옥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던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어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찬 317장 부른다. “어서 돌아오오”
부르면서 구원 초청과 헌신자들을 일으켜 세운다.
3절이 끝나면 예배 마치는 기도를 한다.